노무현입니다

노무현입니다

노무현 입니다

노무현입니다

  그가 죽던 날, 나는 한평 남짓의 고시원 작은 쪽방에 있었다. 고상함이라는 허울에 숨기 급급했던, 어리석고도 길었던 10여 년의 대학생활을 끝내고 나는 다시 두려움을 피해 고시원으로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해는 여러 면에서 질문이 많았던 해였다. 아무런 준비없이 직면한 나의 무능력 앞에 걸어 왔던 지난 날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며 4개월 계약직 인턴으로 나름의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게 뭐라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喪 중에 나는 면접을 보러 갔고, 나의 무능력함 때문인지 어떤 이들은 나를 떠나 갔다.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내가 투표권자가 된 후, 처음으로 내가 뽑은 대통령이었지만 실상 나는 그를 잘 알지 못했다. 인권변호사로서 정치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알지 못했고, 그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도 알지 못했다. 나는 그런 것을 알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된 후, 그의 정치적 행보를 100%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쉽게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일종의 파격(破格)이었다. 완벽한 사람은 아닐지언정 나같이 무능력한 이들과 함께, 그들처럼, 경상도 말로 '데도록' 고민해 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을지 모를 그런 인격적 특질이 나는 좋았다. 그의 죽음 후 며칠동안 나는 잠들지 못했다. 고시원 쪽방에서 대리운전을 마치고 돌아온 옆방 식구의 고단한 퇴근소리를 들으며, 나는 일기를 썼다.

 

몽환(夢幻)-불면증

 

잠결에도 심장소리를 듣는다. 그 녀석이 잠투정하듯 내 어둠 속 어딘가를 뒤척이면, 나 역시 어두운 방 이리저리 잠자리를 고쳐 눕는다. 방은 아주 어둡지는 않다. 방문 위로 난 작은 창 너머로 아직 잠들지 않은 삶의 불빛이 어른거린다. 도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자동차 소리와 간간이 이어지는 인기척, 그리고 오늘따라 유달리 그르렁대는 바람소리가 창문 틈새로 내 심장을 엿보고 있다. 사실 내 불면(不眠)의 이유 자체가 몽환이다. 아무런 의미없이 사라져버릴 그런 소음들에게 나의 추악함과 연약함, 공허함이 해부되어지고 간파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에... 사는 건 뭘까?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인가? 살면서 많은 것들을 기다리고, 그래서 실망하고 지치기도 했다. 때로는 개인적인 성취와 영적인 부요함을, 때로는 사회정의를... 하지만 결국 산다는 것은 그 분이 내 기다림의 전부라는 것을 알아간다는 것일까? 이 말이 갖는 의미의 풍성함과 부요함과 영광스러움을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 분이 내 기다림의 전부이기에 나는 더이상 두렵거나 지치지도, 실망치도 않는다'고 멋을 부려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못내 겸손한 척, '필요이상으로 두려워하거나 지치지도, 실망치도 않는다'고 고쳐 말한다. 물론 그것마저 곧 허세로 드러날테지. 나는 나의 필요를 깨닫고 선택할 수 있을만큼 선하지 못하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 분은 선하시다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라고... 다만 나는 그 분 안에서 그리고 믿음 안에서, 이 불면의 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영적 예배로 드린다고 가난하게 간구할 뿐이다. 나의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때까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51:17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유다서1:24~25

 

2009. 05. 26.

 

노무현 입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나에게 정치적 절망감을 안겨준 또 하나의 사건은 현재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재판 중인 또 다른 한 대통령의 당선이었다.

 노무현 입니다

 

차가운 공기의 무게를 느끼며 출근하다,

무섭게 한편의 시가 떠올랐다.

외투 깊숙이 의문 부호 몇 개를 우겨넣고
바람의 철망을 찢으며 걸었다, '겨울, 우리들의 도시', 기형도

우리는 더 큰 불의에 직면하게 되리라. 더 큰 무지에 직면하게 되리라. 더 큰 무력감에 직면하게 되리라. 더 큰 절망의 철망을 찢으며, 그날이 그날같은 하루를 걸어야 하리.

어제 저녁부터 줄곧 '하박국'을 생각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불의를 목도하고도 잠잠하시나이까", 하박국 1장

...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의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부재감이 이렇듯 감사로 바뀔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 부재하시는 것만 같은 역사속에서 세상의 모든 슬픔과 절망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견디어 내신다. 하나님의 부재, 머리를 흔들며 '하나님은 없다'(시편 10편) 하는 모든 조롱에 오래 참으시며, 당신의 백성이 느끼는 하나님의 부재감 속에 '실존하시며', '일하신다'.

'모든 삐걱이는 슬픔에게 저벅저벅 돌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해본다.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와 슬픔을 오래 참으시며 기어이 하신 그 일..
견고한 죄의 철망을 찢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일..
우리에게 말씀하신 지상명령 역시 그 것일 것이다.

나는 나의 짐을 대신 짊어질 영웅을 원했으나,
그분은 나를 원한다 하시고, 당신의 멍에를 지라 하신다.
우리의 절망 위에 그분의 나라가 서는 것을 보라 하신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4-5

울지 말라.. 울지 말라..

마라나타..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

 

2012. 12. 20.

18대 대선 다음날.

 

 

  지난(至難)한 10여 년 간의 사건들이 지나간 오늘, 나는 그의 대통령 당선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10여 년이 지나도록 못났을지언정, 나는 한 가정을 떠받치며 '먹고 사는 문제'를 '데도록' 고민하는 가장이 되었다. 나 같이 못난 이를 위해 '데도록' 고민해줄 것 같은 그가 떠난 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데도록' 싸우고 있을 때 나는 그의 고통에 무관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무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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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입니다

  그는 그의 한 동지에게 '그가 꿈꾸는 세상'이 올 때에 그 곳에 자기가 없을 것 같다며, '그 때가 오면 내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가 없는 지금 그의 친구가 '그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나는 막연히 두렵기도 하다. 어떤 식으로든 또 다른 실패를 경험하게 되지는 않을지... 하지만 그가 떠나던 날, 그의 노란 풍선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는 수많은 노란 풍선을 남기고 떠났다. 그것은 꿈이고 '보통 사람'은 아닐런지... 사나운 소나기를 맞으며, 슬픈 역사의 대열을 지킨 '보통 사람', '진짜 먹고 사는 문제'를 데도록 고민하는 '보통 사람'이 아닐런지...

 

  역사가 설령  라그나로크를 향할지라도 나는 그런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그는 또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2017. 05. 27.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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